반복되지 말아야 할 인류 역사의 아픔
폴란드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 탐방기
삶이 힘겹다고 느껴질 때 한번씩 꺼내 보는 책이 있다. 바로 빅터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이다. 신경학자이자 정신의학자인 빅터프랭클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군에게 잡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다. 그는 죽음보다 더한 절망 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고 견뎌낸 끝에 결국 살아남게 된다.
▲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쪽까지 연결되어 있는 철로, 화물칸에 유대인들을 짐짝처럼 구겨 넣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했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수용소에서의 참혹한 일상을 한권의 책으로 담담히 풀어낸다. 그는 책을 통해 고난과 고통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창조와 즐거움만 의미가 있지는 않다. 삶의 의미가 있다면, 시련이 주는 의미이리라. 운명처럼, 죽음처럼, 시련은 우리 삶의 불가결한 부분이다. 고통 없고 죽음 없이 인생은 완성되지 않는다.” 고통과 시련을 통해 우리의 인생은 완성된다는 그의 말을 통해 많은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 전기 철조망과 감시탑 그리고 수용소 건물이 보이는 드넓은 평야. 빅터 프랭클과 수많은 유대인들은 이곳에서 추위와 굶주림, 학대와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며 강제 노역을 해야만 했다.
언제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번 독일 여행길에 폴란드 일정을 잡아 오시비엥침으로 향했다. 독일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 가량을 이동하면서 힘들다는 생각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한대목이 떠올랐다.
“1,500명의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며칠 밤과 낮을 계속해서 달렸다. 열차 한 칸에 80명이 타고 있었다. 사람들은 마지막 남은 소지품을 담은 짐꾸러미 위에 누워 있었다. 열차 안이 너무나 꽉 차서 창문 위쪽으로 겨우 잿빛 새벽의 기운이 들어올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는 모두 이 기차가 군수공장으로 가는 것이기를 바랐다.……잠시 후 기차가 덜컹거리며 옆 선로로 들어갔다. 종착역이 가까워진 것이 분명했다. 바로 그때 불안에 떨고 있던 사람들 틈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우슈비츠야! 저기, 저기 팻말이.’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심장이 멈추었다. 아우슈비츠! 가스실, 화장터, 대학살. 그 모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이름, 아우슈비츠!…… 새벽이 되자 거대한 수용소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길게 뻗어 있는 몇 겹의 철조망 담장, 감시탑, 탐조등 그리고 희뿌연 새벽빛 속에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뻗어 있는 황량한 길을 따라 질질 끌려가고 있는 초라하고 누추한 사람들의 행렬. 가끔 고함 소리와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사람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교수대를 상상해보았다.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사실 이것만 해도 괜찮은 편이었다. 왜냐하면 그 후로 점점 더 끔찍하고 엄청난 공포와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했던 열차 한 칸이 전시되어 있다. 비좁은 열차 한 칸에 8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몇날 며칠을 이동해야 했다. 힘겹게 도착한 곳은 그들이 결코 원치 않았던 죽음의 수용소인 아우슈비츠 였다.
비좁은 열차를 며칠동안이나 타고나서 도착한 곳이 죽음의 수용소인 아우슈비츠였다니.. 그들이 그곳에 가는 동안 겪었을 고초와 아우슈비츠란 팻말을 봤을 때 느꼈을 두려움, 도착 이후 겪었을 비참한 죽음들을 생각하니 여행자의 4시간은 오히려 감사한 순간인 듯 느껴졌다.
▲ 넓고 황량한 아우슈비츠 제2 수용소 막사의 모습, 역사의 아픔을 교훈으로 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제1수용소와 제2수용소로 나뉘어 있다. 제2수용소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개방해 놓았다.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는 전쟁이 시작되고 독일군이 추가로 지은 시설로 넓은 평야에 막사와 전기철조망, 가스실과 감시탑 등으로 조성되어 있고 가스실 앞까지 철로가 놓여져 있어 기차로 유대인들을 수송하여 바로 가스실로 집어넣었다고 한다.
▲ 독일군이 퇴각하면서 자신들의 만행을 지우기 위해 폭파한 가스실의 모습. 폭파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하면 수감자들은 남녀로 구분되어 나치 친위대 장교 앞에 서게된다. 그가 말없이 왼쪽을 가리키거나 오른쪽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간 사람들은 곧바로 가스실로 향했으며, 몇 시간 뒤 소각로에 들어가 한 줌의 재로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 제2수용소의 가스실로 내려가는 계단. 계단 앞에 놓인 꽃 한 송이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 제2수용소의 가스실내에 존재 했던 실제 소각로 사진이다. 아무 죄 없는 수많은 여성과 노인 어린아이들이 이곳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렸다.
▲ 제2수용소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 한무리의 가족들... 이처럼 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나치들은 무참히 짓밟았다.
▲ 이 철로의 끝이 생과 사를 가르는 곳이었다. 철로 끝 우측으로 소각장이 바로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유대인들을 분류하여 소각장으로 들여 보냈다고 한다. 목욕을 시켜준다는 거짓말로...
▲ 제2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이 생활했던 공간이다. 이건 아마도 화장실 인듯 보였다.
▲ 제2수용소 막사 내부의 모습이다. 나무로 대충 짜여진 3층 침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종잇장처럼 구겨져 추위에 떨며 잠을 잤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꿈이길 기도하면서...
▲ 넓은 들판에 대규모로 지어진 아우슈비츠 수용소 전경.. 주변에 숨을 곳이 없기 때문에 탈출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였다.
▲ 전기 철조망 사이로 힘든 노역을 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모습... 많은 수용자들이 독일군의 고문과 학대를 이기지 못해 전기 철조망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 수용소 행 기차를 타기위해 대기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모습.. 가슴에 단 유대인 표식과 웃음기 없는 어린 아이들의 표정이 슬프기만 하다. 이들은 몇 시간 후 아무 죄 없이 한 줌의 재로 변했으리라...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폴란드 어로 오시비엥침이라고 한다. 아우슈비츠는 독일말로 부르는 명칭이다. 아우슈비츠 제2 수용소를 돌아보면서 참혹했던 역사의 현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써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그저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오늘을 살고 있는 아빠로써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더불어 평화로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오늘의 소중함과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를 나와 제1수용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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