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with 육아

사십이 불혹(不惑)? 네살이 불혹(不惑)?

with_메멘토모리777 2017. 3. 27.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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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은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쳐지는 정글이다. 음식, 장난감, 인형, 그림책 등을 놓고 세 녀석이 늘 각축전을 벌인다. 특히 둘째와 셋째는 과자를 유독 좋아하여 목숨 걸고 싸운다. 그럴 때마다 우리 부부는 늘 외친다.


 “욕심 부리지 말고 서로 양보하면서 먹어라~ 싸우지 마라~”


  특히나 큰딸에게는 동생들을 위한 나눔과 희생, 양보와 관용의 미덕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큰 딸은 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어떨 때는 동생들이 다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럼 또 그런 말 하면 못쓴다며 혼나기도 한다.  


  공자는 나이 사십이 되어서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4살, 5살 아이들에게 불혹(不惑)을 요구한다. 맛있는 음식은 동생들에게 베풀어야 하고 장난감과 인형은 늘 사이좋게 가지고 놀아야 하며, 사탕과 초콜릿의 유혹에 절대로 흔들리지 말 것을 당부한다.


  또한 동생에게 맛있는 것을 빼앗겼을 때 화를 내서는 안되며, 동생과 싸우지 말아야 하고 울거나 징징거리면 안 된다. 욕을 하거나 나쁜 말을 해서도 안되며 항상 성직자와 같은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지닐 것을 요구한다. 이 같은 요구 사항에 불응하면 부모는 불같이 화를 내고 ‘욕심쟁이’, ‘나쁜아이’라며 아이를 몰아 부친다. 그러나 정작 감정조절과 욕구조절에 실패하는 것은 부모 자신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채로...



 옛날 어느 왕국에 유명한 성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자비로웠으며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 어느 날 왕이 유명한 화가에게 성자의 초상화를 그리라 명했다. 그림이 완성되던 날 왕은 연회를 열었다. 드디어 트럼펫이 울리고 그림의 휘장이 걷혀졌을 때 왕은 초상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 초상화 속의 성자 얼굴이 야만적이고 잔인하며 도덕적으로 타락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 무도한 놈!”

 분노한 왕은 신하들에게 당장 화가의 목을 베라고 명했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성자가 왕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왕이시여, 이 초상화는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기 직전까지도 저는 온 힘을 다해 저 초상화에 그려진 모습처럼 되지 않기 위해 싸우고 있었습니다.”

 - 서른살이 심리학에 묻다 -


  성자(聖者) 조차 자신 안의 욕망이라는 악마와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어린 아이들이 욕구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부모들이 우선 취해야 할 행동은 그들의 욕구와 감정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인정하고 받아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욕구와 감정을 조절 하지 못하는 것은 이를 관장하는 전두엽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자의 경우 전두엽이 완전히 발달하는 시기는 대략 30세 전후이다. 이쯤 되어야 어느 정도 감정조절이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불혹(不惑)을 바라보는 나 역시 욕구와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겪는다. 남들이 부러워 하는 좋은 차도 타보고 싶고, 정원이 있는 멋진 집도 갖고 싶다. 단무지를 두개씩 집어 먹는 그놈을 보면 짜증나고, 남보다 한 점이라도 더 먹기 위해 피나는 소고기를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 아내의 잔소리에 심통 부리고 삐치며 아이들에게 괜한 짜증을 부리기도 한다. 전두엽이 완전히 발달하고도 남았을 성인 조차 이 같을 진데 어린 아이들에게 과한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이와 관련하여 <감정코칭>의 저자 최성애 박사는 ‘yes but’ 방법을 제시한다. 아이들의 감정을 ‘먼저 받아주고(yes), 그렇지만(but)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설명해 주는 것이다.   


  어린 동생이 장난감을 만지려 들거나 잠깐 가지고 놀 때 유아기 아이는 참지 못합니다. “안 돼, 내 장난감이야”를 외치며 장난감을 사수하려고 기를 씁니다. 이 때 “넌 장난감 많잖아. 동생 하나만 줘라” 또는 “동생이랑 같이 가지고 놀아”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내 것’이라는 의식이 생기는 유아기 아이에게 동생이 자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은 당연히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경우 감정코칭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선 아이의 화나고 짜증나는 기분을 읽어 줍니다.

  “동생이 승윤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져가서 화가 났구나” (yes)

  그렇게 먼저 아이의 감정을 읽어 준 뒤 다음 단계에 들어갑니다.

(but) “하지만 동생도 그 장난감이 마음에 드나 봐. 아주 잠깐만 갖고 놀게 해주면 어떨까? 그런 다음 승윤이가 다시 갖고 놀면 좋을 것 같은데...”  


  ‘나눔’, ‘양보’라는 개념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성직자적 욕망조절을 강조하는 것은 강아지에게 옆집 개님과 개껌을 나눠 씹지 않았다며 나무라는 것과 다름 없다. 네 살은 불혹(不惑)이 아니라 미혹(迷惑)의 나이다. 어른에게 미혹은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어린이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부모들이여! 아이를 공자로 만들기 위해 안달복달 하기 전에 나부터 불혹의 나이에 걸맞는 행실을 하도록 노력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이의 거울은 부모라는 단순한 진리를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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